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러시아-몽골-중국 관계 (문단 편집) === 칼미크인들의 대이동 === [[표트르 대제]] 치세 러시아는 유럽의 새로운 문물들을 많이 받아들이면서 몽골 제국의 잔재를 청산하기 시작했다. 루스 차르국은 [[러시아 제국]]으로 거듭났다. 당장 표트르 대제가 자국 내 몽골 문화를 청산하고 친서방 정책을 펼친다고 해서 몽골인들에게 영향이 간 것은 아니었지만 후대 [[예카테리나 대제]]가 표트르 대제의 친서방 정책을 계승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칼미크인]]들은 큰 시련을 겪게 되었다. 칼미크인들의 기원은 표트르 대제 이전 17세기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케레이트]]족의 후손이던 토르구트 부족들은 다른 [[오이라트]] 연맹 부족들과 갈등 끝에 부족 전체가 이주할 것을 결정하였고, 서쪽 [[카스피해]] 근방으로 밀고들어와 [[노가이 칸국]]의 노가이족들을 정복하고 노예화했다.[* 노가이족들은 중세 말 동유럽 일대에서 악명 높은 노예 사냥꾼으로 유명했었으나, 이들의 노예 사냥을 복수하려던 [[코사크]]와 신장에서 이주해온 토르구트인들의 공격을 동시에 받고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었다.] 이들이 새로 정착한 땅은 아주 살기 좋고 비옥한 땅이었다. 얼마나 비옥했던지 18세기 초 카스피해 북부의 칼미크 칸국을 방문한 영국인 기록자가 칼미크인들이 농업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않고 있다, 해당 지역의 광활한 땅은 “잉글랜드에서는 엄청난 가치가 있을 테지만, 여기서는 버려져 경작되지 않는다.”라는 기록을 남겼을 정도였다. 해당 기록에 대한 보고가 예카테리나 대제 귀에 들어가자 예카테리나는 러시아 영내의 칼미크 칸국 영토를 축소시킬 계획을 세운다. 예카테리나 대제는 이 지역의 옥토를 노리고 [[러시아인]]과 [[우크라이나인]], [[독일계 러시아인|독일인]] 농민들을 이주정착시켰다. 칼미크인들은 독일-러시아계 정착민이 늘어나는데, 러시아 제국의 과도한 군역 부과로 유목 생활이 방해받으며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칼미크인들의 목초지에 독일인들이 마을을 짓는데 아무 항의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졌다. > 모든 면에서 여러분의 권리는 러시아인들에 의해 제한되고 있습니다. 러시아 관리들이 칼미크인들을 학대할 뿐만 아니라 정부 자신도 이 독립적인 초원 민족을 정주 농민으로 바꾸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야이크 강둑은 [[카자크]] 요새들로 덮였고, 북쪽 경계에는 이주해온 독일인들이 정착했습니다. 이제 곧 여러분들은 돈과 테렉, 쿠마와 볼가 및 다른 거주지들에서 강제로 분리될 것이고, 여러분의 유목 생활은 물도 없는 지역에 한정되어 가축들은 목마름과 굶주림으로 죽어나갈 것입니다. 여러분은 노예의 굴레 아래 굴복하거나, 러시아 황제가 여러분을 죽이기 전에 재빨리 떠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습니다. >---- > 칼미크 귀족 체벡 도르지 타이시가 부족 원로들을 모아놓고 한 연설 마침 [[준가르]]가 멸망하자 칼미크인들은 1771년에 빈 땅이 된 준가르 분지로 귀환을 결정하였고,[* 칼미크인들은 카스피해로 이주한 이후에도 계속 티베트 불교를 믿었고 티베트를 순례하는 경우가 흔해서 준가르족들이 청나라 군대한테 다 죽어나갔다는 소식이 빨리 들어왔다.] [[청나라|청]]도 이를 반겼다.물론 러시아에서는 20만여 명의 칼미크가 대거 이주를 시도하자 경악하여 주변 민족들을 동원해 귀환을 막으려 했고 이 와중에 카자흐인과 키르기스인들의 계속된 공격[* 17세기 말 칼미크족들이 [[카라칼파크스탄]]을 공격한 일에 과거 준가르 칸국에서 많은 카자흐인을 노예로 삼은 일로 카자흐인들이 복수를 벼르고 있었다.]으로 결국 5~7만여 명만이 간신히 청에 이주할 수 있었다. 이것을 토르구트의 귀환이라 한다. 청나라로 되돌아가지 않고 과거 [[노가이 칸국]] 영토에 남은 1만 3천여 호의 칼미크인들은 명목상 돈 코사크에 편입되었으며 오늘날 러시아의 칼미키야 공화국 칼미크인이 되었다. 청나라에 무사히 들어온 칼미크인들은 19세기 또다른 시련을 겪게 되었다. 1864년 청나라 신장 지역에서 회족들과 위구르인 무슬림들이 대대적으로 봉기하는 과정에서 만주족과 몽골족 팔기군을 공격하였고 이 과정에서 청나라에 귀순한 칼미크인 상당수가 무슬림들의 포위공격으로 궤멸당했던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